경주 황룡사(황룡사지)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21-12-22 14: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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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종합일보/신문-홍성조의 역사·문화이야기 122

▲ 황룡사 9층 목탑 1/10 모형-이 모형은 경주시에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의뢰해 제작된 10/1크기의 모형으로 전체 높이는 약 8미터로 내부구조를 볼수있도록 북측은 기와를 잇지 않았다. 모형제작은 기본설계와 실시설계, 1/20 단면모형 제작 구조안정성검토 3D BIM설계단계를 거쳤으며 모형연구 및 제작에는 8년의 기간이 소요됐다. 황룡사 9층 목탑은 신라 선덕여왕 14년(645) 건립돼 황룡사 장육존상 진평왕 천사옥대와 신라 삼보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 탑의 높이는 상륜부 42척을 포함해 225척으로 기록돼 있어 고려척으로 환산하면 약 80미터에 달하는 거탑이다.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월성의 동북쪽에 새로운 궁궐은 짓다가 황룡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사찰로 고쳐짓게해 17년만에 완성하고 절 이름을 황룡사라했다.

진흥왕 35년(574)에 5미터가 넘는 주존불인 금동삼존불을 만들고 선덕여왕 14년(645)에는 자장의 권유로 백제의 기술자인 이비지를 초청해 9층 목탑을 완성시켰다.

▲ 목탑지-삼국유사에 따르면 황룡사 목탑은 자장의 건의로 백제장인 아비지와 신라장인이 국태민안의 염원을 담아 선덕여왕 12년(643)부터 3년간 조성기간을 거쳐 높이 80미터 9층 목탑을 완성했다. 여러차례 중수와 수리를 거치다가 고려 고종 25년(1238)에 몽고의 침입으로 가람전체가 불타면서 목탑과 함께 소실됐다. 1976년부터 실시된 발굴조사를 통해 목탑규모는 한변의 길이가 22미터인 정방형의 형태로 총면적은 490평방미터다 계단은 남면의 3개소 북, 동, 서에서 각 1개소가 확인됐으며, 기단에는 1개의 심초석과 64개의 초석이 정면 7칸, 측면 7칸으로 구성돼 있다. 심초석은 435센치미터×300센치미터의 크기이며 두께는 128센치에 이르는 화강암으로 무게는 30톤에 달한다. 심초석 안에 마련된 사리공은 외곽에 두줄의 홈을 돌려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했으며 그 안에 금동사리 내, 외함이 발견됐다.
이와 같이 황룡사는 4대 93년에 걸친 국가사업으로 완성한 큰 절이었다.

그러나 고려 고종25년(1238)에 몽골의 침입을 받아 불타없어졌으며 지금은 옛터전만 남아 있다.

1976년부터 8년간 발굴조사가 실시돼 4만여 점에 달하는 우수한 문화재가 출토됐으며 당초 늪지대를 매립해 대지를 마련했음을 알게 됐다.

▲ 황룡사 역사문화관-황룡사 역사문화관은 황룡사지 서쪽에 위치해 황룡사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관람객들이 체험하는 역사체험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됐다
사찰은 중문과 목탑, 금당, 강당이 남북으로 길게 배치된 일탑식 배치했으나 금당 좌우에 작은 금당이 배치되는 1탑 3금으로 바뀌었다.

글 정리: 울산종합일보/신문 홍성조 발행인, 대표이사
사진: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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