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푸르른 치유와 생명의 숲 ‘곶자왈’

신유리 기자 / 기사승인 : 2022-01-03 14: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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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년에 걸친 ‘제주 생태계의 보고’ 원시림
이야기 더해진 ‘숲 해설’, 자연 연결 매개체
기후 위기… 생태 보전 가치 ‘사회적 공감대’

▲ 많은 이들이 제주도라 하면 으레 푸른 빛 바다부터 떠올리지만, 사실 제주 섬의 절반은 숲들이 채우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곶자왈은 지형적인 특성상 꽁꽁 얼어붙은 바깥 날씨 속에서도 시들지 않고 여전히 초록빛을 간직한다.
많은 이들이 제주도라 하면 으레 푸른 빛 바다부터 떠올리지만, 사실 제주 섬의 절반은 숲들이 채우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곶자왈’은 지형적인 특성상 꽁꽁 얼어붙은 바깥 날씨 속에서도 시들지 않고 여전히 초록빛을 간직한다. 많은 이들이 자연의 품을 찾아 심신의 평안함을 느낀다지만 여행 경유지로 찾았던 돌무더기 덤불 숲 ‘곶자왈’이 필자에게 온전한 치유를 가져다줄지 알았을까. 곶자왈만이 가진 독특한 생태와 기후로 놀라운 생명력을 실감케 하는 숲의 스토리에 집중해봤다.

● 온대·난대 식물 공존 ‘제주가 만든 숲’
육지 사람이 비행기 타고 제주도까지 와서 굳이 숲속으로 들어갔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만도 한 게 곶자왈은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암괴 지대에 나무, 덩굴, 가시덤불들이 혼재해 있는 작은 숲이다.


고유 제주 방언으로 ‘곶’은 숲이요, ‘자왈’은 암석들과 뒤엉킨 가시덤불이라는데, 원시림이라고 할 정도로 나무나 덩굴 따위가 마구 엉켜 있고, 수풀이 어수선한 모습 그 자체다. 이런 형상으로 미루어 곶자왈은 그동안 돌무더기로 인해 농사를 짓지 못하는 불모지 혹은 활용 가치가 떨어지는 생산성이 낮은 땅으로 치부되었을 거다.
 

단면적으론 코로나로 마음이 멍들고 어지러워진 것이 딱 우리 모습 같기도 했다. 직접 걸어보면서도 느꼈다. 어디가 흙이고 가지인지, 나무끼리 엉켜있는 것인지 뿌리가 올라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숲길을 거니는 동안 바위를 뒤덮은 이끼와 울창한 나무들이 겨울날 마치 열대 우림에라도 순간 이동해온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등한시되어 온 사이 곶자왈은 이렇게 천연림에 가까운 형태로 보전돼 왔다.


그래서 사람이 보기 좋도록 정비한 산림과는 다르다. 척박하고 흙이 부족한 돌투성이 환경 탓에 나무의 뿌리가 지표면 위로 드러난 현상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는데 몇 번을 걷다가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험한 길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울퉁불퉁한 돌길이었던 탐방로에서 여유로이 사색에 잠겨 걷는 잘 정비된 휴양림의 형태는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용암이 만들어낸 돌무더기 땅에서 태어난 곶자왈은 특성상 일년 내내 일정하게 숲속 온도가 유지됐고, 이러한 자연 환경은 사계절 온대 수종과 난대 수종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희귀한 숲을 탄생시켰다. ‘곶자왈’은 그렇게 오직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제주가 만든 숲이 됐다.
 


▲ 많은 이들이 자연의 품을 찾아 심신의 평안함을 느낀다지만 여행 경유지로 찾았던 돌무더기 덤불 숲 곶자왈이 필자에게 온전한 치유를 가져다줄지 알았을까.
● 공존하며 살아 숨 쉬는 강인한 생명터
제주 서쪽을 여행하고 있었던 터라 근처 환상숲곶자왈공원을 찾게 됐는데 이곳에서는 안내를 도와줄 해설가를 배치해서 곶자왈의 생태를 소개하고 가치와 중요성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있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매 정시에 이뤄지는 이 해설을 기다렸다가 듣는 모양인데, 운 좋게도 마침 이날 마지막 타임 해설 일정에 신발 끈 동여메고 따라 나서는 무리들 뒤꽁무니를 우연찮게 쫒게 된 참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해설이 없는 채였다면 언뜻 평범한 숲으로 보고 말 일이지만 해설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들여다보니 시야가 훨씬 더 풍부해진다. 역시 혼자보다는 함께 걸으니 별 것 아닌 이야기에도 살이 붙고 오감을 깨운다.


수만년에 걸쳐 자연 스스로가 정성껏 가꿔온 곳이라는데 여태 봐온 휴양림들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그러고 보니 경이롭고 신비한 분위기가 읽히기도 한다. 미지의 세계처럼 아직도 기록되지 않은 식물이 보고되고, 풀이나 낙엽이 썩은 부엽토만으로 바위틈 사이로 뿌리를 내려야 하는 나무들은 때론 휘어지고 구부러져 있지만 흔들림은 없다. 거대한 바위를 휘감고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바위를 움켜잡고 있었을지 척박한 환경을 이겨낸 강인한 생명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나무 외에도 고사리와 수풀, 가시덤불, 용암 암석 등 자연의 사투가 그대로 얽혀 있는 것이 사람 사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그 사투가 사람들처럼 저 혼자만 살아가겠다고 벌이는 게 아니라 함께 엮여 돕고 공존한다. 바깥 세상에선 서로를 배신하고 상처를 내거나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놓치고, 버리고들 살 건만 시시각각 꿈틀꿈틀 함께 생동거리는 그곳의 생명들은 큰 울림을 안긴다. 발에 밟힐 뻔한 작은 풀까지 어느 하나도 쓸모 없고 귀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고 조용히 알려주고 있다.


곶자왈은 땅 밑으로도 흘러든 빗물을 숨골로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지하수를 만들고, 또 오염된 공기를 정화해주는 역할을 해 ‘제주의 허파’로도 불린다. 지친 마음도 질병이 되는 요즘, 사철 초록빛을 뿜어내는 곶자왈의 청정한 자연 자원은 충분한 위안이자 치유로 다가온다. 막혔던 숨을 토해내는 대신 곶자왈의 품에서 숨을 크게 몇 번 쭈욱 들이 마셔본다.
 


▲ 제주 서쪽을 여행하고 있었던 터라 근처 환상숲곶자왈공원을 찾게 됐는데 이곳에서는 안내를 도와줄 해설가를 배치해서 곶자왈의 생태를 소개하고 가치와 중요성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있었다.
● 심신 회복 돕는 산림자원 ‘웰니스’로 주목
우리가 우리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듯 제주도 주민에게도 이런 곶자왈이 너무나 일상적인 풍경이었던 만큼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고 한다. 

 

척박한 터전이라 방치했던 이곳이 일상화된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 수칙으로 찌든 심신을 달랠 곳을 찾는 지금에 와서야 생태학적 가치가 재조명되고, 관광자원으로도 널리 알려지는 추세다. 기후 위기로 갈수록 웰빙과 행복, 건강이 결합한 ‘웰니스’에 대한 기대나 수요가 높아지고 그것에 부응하는 산림자원의 가치는 높아져만 간다.


숲이 갖는 정서·심리적 치유 효과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우울과 분노 등 부정적 감정의 긍정적 변화다. 숲이 있는 경관을 보며 휴식을 취하면 뇌에서 발생하는 알파파가 증가해 심리적 회복 환경으로 바뀌게 되니 숲의 경치를 눈으로 즐기고, 소리를 듣고, 햇빛을 느끼면서 숲을 걷는 것이 진정을 가져다준다.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일상과 스트레스로 이어진 무한궤도를 멈추고 새로운 시간과 공간 속으로 자신을 풀어놓을 수 있는 시간이다. 점점 내면의 우울과 불안은 걷히고 자연에 안긴 그제서야 왜 사람들이 구불구불히 불편할 법한 이 ‘곶자왈’ 숲속으로 들어왔는지 알 것 같다.


곶자왈 지대는 동서부 지역에만 크게 구좌-성산, 조천, 교래-한남, 애월, 한경-안덕 5개 지대로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다. 이처럼 제주 곳곳에 산재해 있는 곶자왈을 지역에 따라 그 모습과 특징이 조금씩 달라서 지역마다 곶자왈을 비교해 가면서 탐방해봐도 좋다. 

 

온갖 생명을 키워내는 생명터로 제주 생태계의 마지막 버팀목 역할을 홀로 묵묵히 수행해온 곶자왈을 누비며 수만년의 세월에 걸쳐 형성된 숲이 주는 강한 치유의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신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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