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용산서원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21-10-05 12:5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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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종합일보/신문-홍성조의 역사·문화이야기 115

▲ 용산서원은 정무공 최진립 장군을 추모하기 위한 사액서원(조선시대 왕으로부터 서원명 현판과 노비, 서적 등을 받은 서원)이다.
경주 용산서원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에 참전한 정무공 최진립을 추모하기 위한 사액서원(조선시대 왕으로부터 서원명 현판과 노비 서적 등을 받는 서원)으로 유교문화의 바탕속에서 예술적인 가치를 느낄수 있는 곳이다.

고운 최치운 선생은 후손 잠와 최진립(1568~1636)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 25세때 의병으로 공을 세우고 1594년 무과에 급제, 1597년 정유재란때 권율 장군과 공을 세우고, 1630년 삼도 수군통제사, 1636년 병자호란때 69세로 용인전투에서 전사했다.

그후로 청백리에 녹선되고 병조판서에 추증됐다.

정무공 시호를 받았고 경주 용산서원에 제향되고 사액까지 받았다.

경주지역에 많은 서원이 있지만 사액서원은 옥산서원, 서악서원, 그리고 용산서원 3곳 뿐이다.


▲ 조선중기 무신 잠와 최진립(1568~1636)을 기리는 신도비다. 1699년 숙종25년에 최진립을 향사 하기 위해 용산서원을 건립후 입구에 신도비를 세웠다. 정면 3칸,측면 2칸의 팔작지붕 비각안에 놓여있는데 비는 1740년 영조16년에 비각은 그후 2년 후에 세운 것이다. 비머리의 정중앙에 앞뒤로 ‘정무공최선생신도비’라는 전서가 새겨져 있다. 비문은 조경이 짓고 발문은 관찰사 조명겸이 지었으며 글씨는 윤심지가 섰다. 잠와 최진립은 임진왜란때 작은아버지 최봉천, 동생 최계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에 참전해 용인 험천에서 전사했다. 자헌대부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청백리에 녹선됐다. 저서(정무공실기)로 2권이 있다.
사액서원은 도학자들을 대상으로 승인되는데 최진립공은 무반출신으로서 사액서원의 주인이 됐다는 것이 특이하다.

또 최진립 장군의 청백리정신은 손자 최국선으로 이어져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이가 없도록 하라는 마음가짐으로 곶간을 열어 사람들을 먹여 살렸고, 이는 경주최부잣집의 명성으로 이어졌다.

최진립 장군의 선비정신의 면모와 청백리 정신은 경주최부자댁으로 이어져 내려와 우리나라 노블리스 오블리쥬 정신의 효시라 일컬어 지고 있다.

글 정리: 울산종합일보/신문 홍성조 발행인, 대표이사
사진: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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