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재 이언적의 정신과 얼 간직된 ‘옥산서원’

김귀임 기자 / 기사승인 : 2021-04-16 10: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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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이야기] 경주 옥산서원
▲ 이영환 옥산서원 유사와 홍성조 울산종합일보 대표이사가 구인당과 무변루 등 옥산서원 곳곳을 둘러보고 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선비의 삶. 회재 이언적은 1514년 문과에 급제한 때부터 자신의 학문적 견해를 올곧게 밝힌 인물이다. 그는 주희의 주리론적 견해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성리학의 방향과 성격을 정립하는데 힘썼다. 심지어 자신에게 권력층의 견제가 이어져도 온건한 해결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놓아둔 학문의 길을 엿볼 수 있는 ‘경주 옥산서원’을 다녀왔다.

회재 이언적 16대손 이영환 유사 동행
세심대 통해 자연과 벗 삼은 학문 엿보여
구인록, 영남만인소 등 중요 서적 보관


▲ 옥산서원 내 유물전시관과 세심대 모습. 옥산서원 유물전시관에는 구인록, 영남만인소 등 중요 서적이 보관돼 있다.

# 자연과 함께한 선비의 발자취


봄을 시샘하듯 날씨가 변덕을 부리던 때에 경주시 안강읍에 위치한 옥산서원을 찾았다. 옥산서원은 조선 중종 문신인 회재 이언적(1491~1553)을 기리고자 1572년에 창건됐으며 사적 제154호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옥산서원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 왼편에는 계곡이, 서원 주변에는 키 큰 고목들이 반긴다. 고개를 들어 둘러싼 산을 보면, 내가 유생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이는 마치 날과 상관없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알리는 것 같다. 취재팀은 여기에 남은 세월의 흔적을 느끼며 회재 이언적의 발자취를 따라 들어갔다.

이날 탐방에는 옥산서원 이영환 유사와 홍성조 울산종합일보 대표이사가 동행해 역사의 길을 걸었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정문인 ‘역락문’에 들어서면 곧장 2층 누각인 ‘무변루’와 맞닥뜨리게 된다. ‘역락문’은 ‘논어’의 ‘학이’편에 나오는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에서 취한 것이다. ‘무변루’ 옆에는 작은 개울이 흐를 수 있도록 했다. ‘무변루’에서 바라보는 자계천과 산들은 마치 내가 자연 정원을 가진 듯하다.

그런 ‘무변루’를 지켜보는 강당 건물, ‘구인당’에 올라서면 앞마당 너머로 ‘무변루’와 멀리 무학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인당’에서는 공부를, ‘무변루’에서는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구조로, 이 사이에 탁 트인 공간을 조성해 건물과 자연 사이의 경계를 최소화했다.

이 사이 마당 양쪽으로는 서생들의 기숙 공간인 동재와 서재 건물이 있다.

‘구인당’ 뒤편에는 이언적의 위패를 모신 사당 ‘체인묘’가 있다. 여기서 체인은 어질고 착한 일을 실천에 옮긴다는 말로, 성리학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것이다. 체인묘 왼쪽에는 회재 이언적의 덕을 기리는 비각이 서 있다. 비각 안에는 회재 이언적의 신도비가 서 있으며 신도비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6-1호로 지정돼 있다.

옥산서원의 서쪽 담장 바깥에는 개울과 많은 사람이 앉아서 함께 대화할 수 있는 널찍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는 ‘세심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맑은 물이 고였다, 흘러가는 계곡물에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에 정진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심대’의 글씨는 퇴계 이황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 옥산서원 내 유물전시관에 보관돼 있는 중요 서적들. 옥산서원에는 삼국사기 원본이 보관돼 있다.
▲ 옥산서원 주변 곳곳에는 세월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는 고목들이 자리잡아 장관을 이룬다.

# 회재 이언적, 그가 살아온 이야기


회재 이언적은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황과 함께 ‘동방오현’이라고 불렸다.

특히 직책이 있으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권력층의 대립에도 정치의 도리를 꿋꿋이 논한 인물이기도 하다.

회재 이언적은 만년에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구인록(1550)’, ‘대학장구보유(1549)’, ‘중용구경연의(1553)’, ‘봉선잡의(1550)’ 등의 중요한 저술을 남긴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의 업적은 고스란히 옥산서원에 남아 보존되고 있다.

‘구인록’의 경우 핵심 개념인 인(仁)의 집중적인 관심을 보여준다. 회재 이언적은 인의 본체와 실현방법에 관한 유학의 근본정신을 확인하고자 했다.

유생들이 임금에게 올린 집단적인 상소인 ‘영남만인소’ 역시 옥산서원에서 만나 볼 수 있었다.

또한 회재 이언적이 왕에게 올렸던 상소문인 ‘일강십목소’와 ‘진수팔규’는 군주 사회의 통치 원리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하늘의 도리에 순응하고 백성의 마음을 바로잡는 왕도정치의 기본 이념을 담았다.

이에 정조는 회재 이언적의 학덕을 기리고자 옥산서원의 세심대에서 초시를 치르기도 했다.

회재 이언적의 정신은 ‘독락당’에도 잘 깃들어 있다.

옥산서원에서 서북으로 자계천을 따라 700m쯤 가면 보물 제413호 ‘독락당’이 위치한다. 이곳은 회재 이언적이 벼슬을 그만두고 내려와 홀로 자연과 벗하며 책 읽던 공간이다.

바람이 불어와서일까. 옥산서원과 독락당을 오가는 길에는 어떤 학자의 고심이 서려 있다가도 사라지는 것 같다.

옥산서원을 감싸는 자개천의 분위기는 아늑함을, 독락당에서 바라보는 자연정원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마음의 때를 닦고 싶은 이들을 기다리는 것처럼.
 

*본지 취재에 깊이 있는 해박한 지식으로 각별한 도움을 주신 회재 이언적 선생의 16대손인 옥산서원 이영환 유사님께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글 = 김귀임 기자
사진 = 박기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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