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부자집(1971년5월27일, 국가민속문화재 제27호 지정)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21-08-09 10: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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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종합일보/신문-홍성조의 역사·문화이야기 109

▲ 경주 최부자집은 1779년에 건립되었다. 당시 99칸이었다고 전해지며 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곳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ㅁ'자 모양이고 대문채는'ㅡ'자 모양이다. 사당을 안채의 동쪽에 배치하지 않고 서쪽에 배치한 점, 기둥을 낮게 만들어 집의 높이를 낮춘 점, 집터를 낮게 닦은 점 등은 성현을 모시는 경주향교에 대한 배려로 최부자집의 건축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정무공 최진립을 시작으로 한 '최씨가문'은 1대 최진립에서 12대 최준까지 12대에 걸쳐 400년간 만석의 부를 유지하면서 학문에도 힘써 10명의 진사를 배출한 경주지역을 대표하는 나눔과 상생을 실천한 명문가문(12대가계,1568~1970)이다.

정무공의 손자 최국선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이앙법을 도입, 수리시설을 개선하여 생산성을 높혔다. 또 8할을 받던 소작료를 절반만 받는 파격조치를 단행하여 선구적 경영에 앞섰다.



▲ 최부자집의 큰 사랑채는 팔작지붕의 'ㄱ'자형 건물로 돌출된 누마루가 있다. 1970년 화재로 불 탄 뒤 2006년에 복원 되었다. 작은 사랑채는 손님이 많으면 활용하던 공간이며 역시1970년 화재로 전소 되었다가 2020년 12월에 복원되었다. 또 현존하는 조선시대 민가 목재 곳간으로, 곳간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되었으며 10칸으로 800석의 곡식을 보관할 수 있었다.
만석을 넘어가는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는 등 일구어 낸 부를 움켜쥐지 않고 필요한 곳에 나누며 상생을 추구했다.

또 경주 최부자집은 1년에 쌀2천 가마니를 과객대접을 위해 쓴다고 했을 정도로 정성을 다해 과객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12대 최준 당시에는 하루 100여 명의 과객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 최부자집의 안공간인 안채는 여성들의 일상 생활공간으로 외간 남자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는 곳이다. 1926년 서봉총 발굴때 참관한 스웨덴 그스타프 왕세자가 사랑채에 머물며 안채에 많은 관심을 보였으나 끝내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ㅁ'자 형태로 내외벽이 있어서 바깥에서 안채 내부를 전혀 볼 수가 없다. 최부자집 안채 내부는 건물이 크고 마당이 넓은 것은 과객 맞이를 위한 상차림 공간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최부자집 11대 최현식(국채보상운동 경주군회장)은 경주의 문중대표들과 사랑채에 모여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하고 추진하였다.

또 최익현(1833~1906)은 이곳을 거점으로 의병 봉기를 계획하였고 1903년 의병장 신돌석(1878~1908)은 일제탄압을 피해 장기간 최부자집 사랑채에 숨어 지낸 바 있다.

이 밖에도 이 사랑채는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보낸 백산무역주식회사(백산 안희제1885~1943)1916년 독립운동의 정보역할 및 군자금 마련 위해 백산상회 설립의 산실로 일본경찰의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자금을 전달받은 곳이기도 하다.

또 식민지역사를 몸소 겪으며 교육부족이 나라를 빼앗긴 이유라 생각하였던 11대 최준은 해방후 1947년 전 재산을 기부 현 영남대학교의 전신인 대구대학을 설립하였다.




▲ 경주 최부자집과 향교를 비롯한 몇 채의 한옥만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던 교촌마을(신라시대최고교육기관, 고려시대향학과 조선시대 향교를 품었던 천년의 배움터)은 2009년 경주시가 체험형 관광지로 활용하기 위하여 전통한옥복원을 시작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
그 뒤 삼성 이병철 회장에게 운영을 맡꼈다. 이렇듯 최준은 300여 년 동안 내려오는 가산을 민족교육을 위해 바치며 마지막 최부자로 명성을 남겼다.

경주 최부자집과 교촌마을은 향교를 비롯한 몇 채의 한옥만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다가 2009년 경주시가 체험형 관광지로 활용하기 위하여 전통한옥복원을 시작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 

 

경주 최부자집은 1971년5월27일 국가민속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었다.

 

경주 최부자집 가문의 육훈
제1조 사방 100리 안에 굶는 이가 없게 하라.
제2조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하지마라.
제3조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제4조 과객을 후하게 대접 하라.
제5조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제6조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


글 정리: 울산종합일보/신문 홍성조 발행인, 대표이사
사진: 박기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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