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숨 붙어 있는 그때까지만…”

김귀임 기자 / 기사승인 : 2018-12-13 11: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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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愛울산- 독거노인 나인수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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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 나인수(80?사진) 할아버지는 눈이 불편해 비스듬히 앉은 채로 귀를 기울인다.

한눈에 보아도 세월을 짐작하게 하는 건물. 엘리베이터는 물론, 초인종 하나 없는 그곳에서 나인수(80) 할아버지는 조그마한 바깥 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어두워져 가는 눈에 길을 걷다 전봇대에 부딪히기 여러 번. 그럼에도 길을 나서는 이유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아버지는 괜찮다”는 말로 자신을 무장한 나인수 할아버지는 요즘 부쩍 길어진 하루를 과거로 흘려보낸다. 영하를 찍는 날씨에도 이불과 옷가지로 몸을 동여매다 손님이 온다는 소리에 그제야 떼기 시작한 보일러에 괜히 눈앞이 시큰하다.


기초수급비 30여 만원으로 생활
배추와 우유, 한 끼 식단의 전부
하모니카와 여행, 삶을 이을 이유


# “아버지는 혼자 괜찮다”
“가끔 그때가 생각나지. 생각 안 난다 하면 거짓말이지. 안사람 살아있고 아이들과 함께 살던 그때가…” 슬하에 3명의 딸을 둔 나인수 할아버지는 몇 년 전 병으로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가 됐다. 딸들은 결혼해 분가한 지 오래고 의지하는 수입은 노령연금과 기초수급비로 나오는 30여 만원이 전부. 그마저도 딸들의 수입이 많아지면 적어진다며 웃어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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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치 않은 몸이지만 빨래와 청소는 오로지 혼자 남은 할아버지의 몫이다.

할아버지의 하루는 유난히 길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혹여나 자식들에게 폐를 끼칠까 말 하나하나도 조심스럽다. “여기는 다 빈촌이에요. 나는 나름대로 편하게 사는 거니까…” 예전부터 어려웠던 살림에 할아버지는 65세가 될 때까지 가족들이 굶지 않게 하기 위해 태화강 하구 재첩을 잡아 내다 팔았다. 할아버지는 그때를 회상하며 자신을 ‘재첩 잡아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구청, 시청에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굶는 사람들이 없도록 눈감아 줬고, 때문에 지금까지 할아버지는 버텨왔다.


혼자 남은 심정을 감히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얘기하는 내내 방바닥을 쳐다보며 말하던 할아버지는 가끔씩 눈을 비비며 아내 얘기를 꺼냈다. “고생만 하다가 간 사람이에요. 저혈당으로 쓰러져 병원에 가니 췌장이 40% 밖에 안 남았다 하더라고. 입원해서 한 20일 되니까 급성 폐렴이 왔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일까. 중환자실로 옮긴지 3일 만에 할머니는 그렇게 가버렸다.


할아버지의 하루에서 할머니를 뺀 시간은 길었다. 가끔 찾아온다는 딸들도 없는 살림의 셋방살이 신세이기는 매한가지기에 할아버지를 챙길 여력이 없다. 혈압약, 당뇨약, 전립선약… 줄줄이 꿰고 있는 약들에 마음이 아득해져 올 때쯤 할아버지는 자신이 새벽에 못 일어날까봐 두렵다고 했다. “아내가 저혈압으로 거품 물고 쓰러진 걸 봤잖아요? 그래서 내가 한동안 커피를 먹고 잤어. 새벽이 되면 혈당이 딱 떨어져 버려요. 그래서 새벽에 가는 거에요. 하기야 잘 때 가버리면 끝나는 거지만” 그래서 할아버지는 생활 패턴을 바꿨다. 저녁 6시에 자서 새벽 2~3시에 일어나는 할아버지는 그렇게 조용히 해가 뜨길 기다린다.

# 성치 않은 몸, 하루를 버텨 내는 법
80이 넘어가는 나이. 자연스럽게 죽음을 생각하는 나이가 됐다. 자연히 할아버지의 몸도 성한 곳 하나 없다. 틀니조차 맞출 수 없는 잇몸과 멀어가는 눈에도 할아버지는 담담했다. “전화 올 데도 없지만은… 전화가 오잖아요? 못 봐요 나는. 지금 선생님 여기 앉아 있잖아요. 근데 그거 안보여. 형태만 겨우 보여” 바닥을 쳐다 보다 눈을 마주치려 노력하는 눈동자에는 회색빛이 어렸다. 시끄럽게 들려오는 텔레비전 소리 역시 ‘보는 것’이 아닌 ‘듣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옆으로 비스듬히 앉은 채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밖으로 장보거나 나가면 나무에 박아버리고 앞에 가는 사람도 그렇고 전봇대도 박아버려. 길 건널 때는 차 소리 듣고 건너가요. 차가 온다 싶으면 한참 서있다 끊길 때가 됐는데 싶어서 건너가고” 그럼에도 밖에 나가는 이유는 혹여나 자식들에게 자신이 짐이 될까 싶어서다.


성치 않은 몸에 끼니를 제대로 챙길 리가 없다. 식사를 위한 장을 보고 오는 건 우유 두 통에 배추 두 통. 푹 삶은 배추에 밥을 싸서 먹는다. “우유는 사먹은 지가 2달 가까이 돼 가요. 우유는 한 팩에 2800원, 두 팩 사면 5600원…” 우유를 사게 된 계기는 영양 부족으로 대상 포진을 앓고 난 후부터다. 우유에는 영양이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한 할아버지는 그 이후부터 꼬박꼬박 우유 한 컵 씩 챙겨 먹고 있다. 당뇨에는 운동이 제일이라는 말에 장을 보고 오면 20분도 안 걸리는 시간을 일부러 빙빙 돌아 40분 넘게 걷는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면 차가운 냉기가 할아버지를 맞이한다. 가끔 놀러오는 사람이라 해도 이따금씩 방문하는 사회복지사와 같은 처지의 근처 할머니뿐이다. 사회복지사는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를 반복해 묻다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떠나버리고, 근처 할머니 역시 다리가 불편하기에 자주 찾지 못한다. 그래서 일까. 할아버지는 한번 나가면 오래 걸으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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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사회복지사에게 부탁해 커다란 글씨가 적힌 종이를 문 앞에 붙여 놨다. 작은 현관에 홀로 남은 신발이 유독 쓸쓸해 보인다.

‘1. 휴대폰 챙기기, 2. 가스밸브 잠그기, 3. 전기코드 뽑기’ 지금보다 눈이 조금 더 보였던 때, 할아버지는 사회복지사에게 부탁해 커다란 글씨가 적힌 종이를 문 앞에 붙여 놨다. “어쩔 때는 정신이 왔다 갔다 해. 아직까진 치매 같은 게 없는데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해놨어요. 나 혼자니까” 독거노인. 이 단어의 의미를 잘 알고 있던 할아버지는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며 자식들을 감쌌다.

# 하모니카와 여행, 삶을 잇는 수단
아무리 혼자라 해도 물가가 올라가고 있는 지금 손에 쥐어지는 30만원으로 한 달 버티기엔 빠듯하다. 주거비와 의료비가 기초수급자로 어느 정도 선에서 해결된다 하더라도 식비와 기타 생활비는 오로지 할아버지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소소한 여행을 꿈꾸는 할아버지의 바람은 사치다. 날이 갈수록 걷는 것이 달라진다는 말과 함께 이제는 ‘포기’ 했다는 꿈을 말하며 할아버지는 손을 연신 만지작거렸다. “나라고 여행 안가고 싶겠어요? 누가 어디 가는데 따라 갈래 하길래 얼만데? 하고 물어보니 5만원이 든다 하면… 아이고 그거 안가고 말아버리지 뭐(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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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4년 동안 복지관에서 무료로 하모니카를 배웠다. 배워도 잊혀지지만 하모니카는 할아버지의 삶에 큰 의미로 자리 잡고 있다.

언제까지 이어질까.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 할아버지는 살아갈 의미를 만드려 부단히 노력했다. “복지관에서 하모니카를 무료로 배울 수 있대요. 그래서 지난 4년 간 열심히 배웠어. 근데 배운 건 또 잊어버려요. 7~80곡을 배웠는데 지금 4곡 밖에 생각이 안나. 그래도 앞으로 계속 배우고 싶어. 이걸 손 놔버리면 내가 할 일이 없어. 살 의욕이 없어져 버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를 위해 복지관에서는 ‘특별 악보’를 제작했다. 보통 악보보다 몇 배로 큰 가사와 숫자로 써 있는 악보에 할아버지는 돋보기로 몇 번씩 확인하며 하모니카를 연습했다. 이따금씩 홀로 공원 구석에 앉아 자유롭게 연주해 보기도 했다.


“지금 몇 회째 하고 있어요. 사회복지사가 와서 얘기하고 이걸 몇 회째 반복하고 있어…” 고생만 하다 혼자 남겨진 사람. 그러나 반복되는 희망과 쓸쓸함에 이제는 눈을 감고 되뇌어 본다. “이제는 다 포기해서 안돼. 그렇지만 만약 다시 여유가 된다면 여행을 가보고 싶어요. 아직 내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을 때. 내가 숨이 더 붙어 있을 때…”


글?사진=김귀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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