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구름 위 우뚝 솟은 용장사 탑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16-05-18 11: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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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산을 가다<하>

일체된 자연과 조형물… 맑고 깨끗한 부처세계
따뜻한 미소로 사바세계 살피는 마애여래좌상
“아는만큼 보이는 서남산, 신라인이 된 것처럼”


삼도 없는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남산정상 가까운 바위벽에 6m 높이로 새긴 이 불상은 약수계곡 마애대불에 이어 2번째로 큰 불상이다. 정면에서 감상해야 잘 보이지만 낙석의 위험으로 인해 지금은 통행이 금지돼 있다.


짧은 목에 세 개의 주름은 없고(삼도라고 부르며, 번뇌, 업, 고통을 의미한다.) 건장한 신체는 네모난 얼굴과 잘 어울린다.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불법을 설할 때 짓는 손 모양을 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결가부좌한 다리위에 올려놨다. 불상의 신체는 거칠고 억세게 선각했고, 좌대는 부드러워지다가 희미하게 사라져 버린 듯하다. 이러한 조각 수법은 불교가 바위신앙과 절충해 바위 속에서 부처님이 나오는 듯한 모습을 표현했다. 입체감 없는 신체표현, 거칠고 치졸한 옷 주름 선 등으로 보아 9세기 불상양식을 반영하는 거대 불상이다.


▲ 용장계곡

용장계곡, 34개 중 가장 큰 골짜기
삼릉에서 출발해 한 시간 삼십분을 오르면 남산의 정상인 금오봉에 도착한다. 금오산이라고 적혀있는 정상 표지석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금오봉에서 20여 분 정도 걷다보면 용장계곡이 나온다. 용장계곡은 금오봉과 고위봉 사이의 골짜기로 34개의 골짜기 중 가장 큰 계곡이다. 그래서인지 남산을 처음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삼릉에서 출발해 용장골로 하산하는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용장계곡에는 용장사지 등 18개의 절터와 7기의 석탑, 5구의 불상이 남아 있다. 산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용장사 절터가 있는데 당시 이 계곡에서 가장 큰 사찰로 추정되고 있다. 용장사 터 동쪽 높은 바위 위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삼층석탑이 우뚝 솟아 장관을 이루고 삼층석탑 아래는 삼륜대좌불과 마애여래좌상이 자리 잡고 있다. 용장사는 통일신라시대 법상종을 개창한 대현스님이 거주하신 곳이며 조선 세조 때의 대학자이신 승려인 설잠스님(김시습)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대현스님이 삼륜대좌불을 돌면 부처님도 따라 머리를 돌렸다고 하며, 그 뒤쪽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은 지금도 따뜻한 미소로 사바세계를 굽어보고 있다.


설잠스님, 수능시험 단골소재 금오신화
용장계곡은 조선시대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던 곳이다. 21세 때(1455년) 수양대군(세조)의 단종 폐위 소식을 접하고는 통곡한 뒤 읽던 책을 모두 불태우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고 한다. 수년 간 전국의 명산대찰을 떠돌다가 29세 되던 해 찾은 곳이 바로 이곳 용장사이다. 7년간은 은적암에 머물며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집필했다. 은적암에서 잡다한 세속의 번뇌를 씻어낸 그는 뒤에 충남 부여 무량사에 머물며 후학을 지도하다가 59세(1493)의 일기로 별세했다.


초기불교 신앙의 중심, 탑의 기원
탑의 기원은 인도어 스투파(Stupa)를 한자로 옮긴 탑파((塔婆)의 줄임말이다. 처음에 탑은 석가모니 열반 후 그 몸에서 나온 8만4000개의 사리를 안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탑파는 초기불교의 신앙의 중심이 되었는데 그것이 탑의 기원이다. 초기의 탑은 마치 사발을 엎어놓은 듯 둥글게 만들었으며, 후기로 갈수록 목조건축물의 형식을 취하게 됐다. 탑의 재료는 중국에서는 벽돌 탑을 많이 만들었고 일본은 목탑을 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주로 돌을 깎아 탑을 세웠다. 우리 땅에는 화강암이 많기 때문에 인도나 중국처럼 거대한 탑은 없지만, 아이러니하게 단단한 돌로 인해 오늘날까지 많은 석탑의 흔적이 남아있다. 돌로 만든 석탑의 형식은 한국만의 양식이다.


▲ 용장사 삼층석탑

용장사곡 삼층석탑, 하늘에 맞닿은 탑
아득한 구름 위 하늘나라 부처님 세계에 우뚝 솟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 용장사 탑은 해발 약 400m의 높고 큰 바위산을 하층 기단으로 삼아 건축한 삼층석탑이다. 하층기단인 바위산이 8만 유순(1유순은 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의 높은 수미산(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하는 산)이라면, 바위산 정상은 사왕천이요 첫째 기단은 도리천이 되고 그 위로 층층이 쌓은 옥신은 하늘나라 부처님 세계를 나타낸 것이다. 높이 5m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탑이지만 암반 자체를 하층기단으로 삼아 자연과 조형물이 일체가 돼있어 밑에서 올려다보면 하늘을 배경으로 부처님 세계에 우뚝 솟은 감격스런 탑이다. 맑고 깨끗한 부처님 세계를 그리는 조상들의 신앙과 정열에 감탄 하고 저절로 머리 숙여진다. 이 탑은 9세기경 신라 말기의 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 용장사 터에서 바라다본 3층석탑

용장사 터, 신라∼조선까지 이어진 사찰
금오봉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가장 큰 봉우리를 주산으로 삼아 용장사 절터가 자리하고 있다. ‘용장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고 신라, 조선시대의 유물들이 함께 출토되어 천년 전의 역사가 최근까지 이어진 유서 깊은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거대한 돌축대들은 이 절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말해주고 있다.


앞을 내다보면 은적골 절터와 삼각산이 발아래 보이고, 멀리 고위산이 드높게 보인다. 건물터로 추정되는 이곳에서 동북방향으로 바라보면 위쪽에 삼륜대좌불과 마애여래좌상 등이 있으며 그 정상에는 삼층석탑이 우뚝하게 솟아 마치 도솔천을 연상하게 한다. 용장사는 통일신라시대 대현스님이 법상종을 개창했던 절이며, 조선시대 대학자이자 스님인 김시습이 머물던 곳이다.


단정하고 풍만한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이 불상은 자연 암벽에 조각된 것으로 균형 잡힌 신체에 단정한 이목구비가 돋보인다. 얼굴은 풍만해 귀는 눈에서 목까지 크고 길게, 머리카락은 나선형으로 표현됐다. 목에는 3개의 선으로 표현된 삼도가 뚜렷하다. 옷의 주름선은 얇고 촘촘한 평행선으로 섬세하게 표현했다. 왼쪽 어깨 바깥 부분에는 글씨가 새겨 있으나 많이 닳아있어 판독이 어렵다. 남산을 찾는 이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길이 서남산 코스인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그냥 무심하게 지나치지 말고 신라시대로 돌아가 신라인으로 남산을 밟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거꾸로 가는 시간이 그 아니 즐거울까.


최상형 레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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