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를 때마다 다른 감동, 남산의 오묘한 멋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16-02-19 13:3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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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남산 답사길

경주 남산을 오르는 길은 대표적으로 통일전에서 오르거나, 남산서쪽 주차장 쪽에서 오른다. 남산을 찾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인 것이다. 거의 찾지 않는 내남 백운대 마을에서 오르는 길은 남쪽에서 오른다 해서 남남산 답사길이라 부른다. 신라시대 남산에는 150여 개 이상의 사찰이 있었다하니, 오늘날처럼 울창한 숲이 아닌 산위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을까! 남산은 밤이 되어도 수많은 전등불이 켜져 있어 대낮처럼 환했다고 한다. 또한 계림(경주)에는 기와집이 끊임없이 연결되어있고,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는 18만 가구, 5인 이상 가구라면 90만 이상의 인구가 살았다고 한다. 경주국립박물관의 출토된 문화재로 보아 서양과 문화가 오고 갔으니, 실크로드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 경주이지 않았을까. 위대한 경주남산의 남쪽을 답사해보자.


길마다, 계절마다, 해의 방향 따라 다른 느낌
실크로드 시작점이자 종착점은 경주였던가
수많은 불상과 탑들에 크고 작은 사연 담겨


▲ 열암곡석불좌상

천년을 잠자던 부처님, 열암곡석불좌상
남남산의 시작점은 내남면 백운대 마을로 올라가면 된다. 바위가 줄을 지어 연결돼 있다하여 열암곡(列岩谷)이라 부른다. 열암곡석불좌상(列岩谷石佛坐像)은 불상의 머리, 대좌(臺座:불상을 올려놓는 자리)일부가 빠지고, 광배(光背:부처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머리나 등의 뒤에 몸에서 나는 빛을 표현한 둥글게 빛나는 빛)는 여러 조각으로 파손돼 주변에 흩어져 있었으나, 2005년 주변에서 불두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보수, 정비해 2007년도에 현 모습이 복원됐다. 발굴과정에서 넘어진 마애여래입상이 발견되었다. 넘어진 마애불은 지면과 거의 붙을 정도의 거리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천년을 잠자던 부처님이 발견된 것이다. 이곳은 불교신자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


열암곡석불좌상은 육계(肉髻:뼈가 솟아서 된 상투모양, 지혜를 상징)는 낮고 넓으며, 나발(螺髮:부처의 머리털)이 약간 큼직하게 표현돼 있다. 얼굴은 상당히 볼륨이 있지만 코와 입 주변은 마멸이 심하다. 불상의 몸은 당당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신체 비례라고 할 수 있다. 가사(袈裟: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는 옷)는 양쪽 어깨에서 상반신을 모두 덮어 걸쳤는데, 이 가사는 비교적 얇게 표현되어 신체의 윤곽 등이 드러나고 있으며, 옷주름은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


광배는 화염문(火焰紋:타오르는 불꽃을 묘사한 무늬)과 당초문(唐草紋:여러 가지 덩굴이 꼬이며 뻗어 나가는 모양의 무늬)과 함께 9구의 화불(化佛)을 새겼는데, 섬세하고 치밀해 우수한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연화좌(蓮華坐:연꽃 모양으로 만든 불상의 자리)는 상대(上臺)에 연꽃이 위로 향하게 3단으로 하대(下臺)에는 연꽃이 아래로 향하게 각각 새겼고, 팔각의 중대석(中臺石)은 새로 만들어 끼웠다.


▲ 열암곡마애여래입상

이 불상은 풍만하면서 당당하고 안정감 있는 신체표현, 대좌와 광배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조각수법, 몸에 밀착시켜 입은 얇은 가사 등으로 보아 석굴암 본존불상에서 완성된 통일신라시대 조각의 양식과 수법을 따르면서도 통견의 가사착의법이나 무릎으로 흐르는 옷주름, 다소 경직된 인상 등은 석굴암 본존불상과는 다른 요소도 지니고 있는 바, 조성 시기는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손가락모습은 항마촉진 수인의 모양이다. 인도의 왕자인 고타마 싯다르타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수행을 해, 마침내 깨달음을 얻자 주위의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나기 시작한다. 그러자 마귀왕은 마군들을 보내어 고타마 싯다르타에게 활을 쏘았다. 그러나 화살이 싯다르타에 이르기 전 떨어져 꽃으로 변한다. 마군들이 창을 던지자 또 꽃으로 변했다. 마귀왕은 여자를 보내어 유혹하지만 넘어가지 않는다. 마침내 마귀왕이 직접 와서 방해했으나 결국에는 마왕이 항복한다. 이때 부처는 오른손을 풀어서 오른쪽 무릎에 얹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을 했는데, 석가모니가 수행을 방해하는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성취한 깨달음을 땅의 신이 증명했음을 상징하는 손 모습이다. 석굴암 본존불상도 항마촉지인의 수인이다.


▲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

구름위에 앉은 듯한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
칠불암 위의 절벽 면에 새겨져 마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듯이 보이는데, 머리에 삼면보관을 쓰고 있어 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감실형태의 벽면에 얼굴은 풍만하고, 오른손에는 꽃가지를 들고,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서 설법하는 모양을 표현했다. 팔각형으로 보이는 대좌 아래로 옷이 흘러내리고, 오른쪽 다리는 아래로 내려놓은 자세이다. 그 아래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이 조각돼 있다. 불상 높이는 1.4미터이며,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부처님과 보살을 구분하는 법은 보살은 보관(寶冠:머리에 쓰는 관), 목걸이, 팔찌 등 장신구를 하고 있지만, 부처는 장신구를 하지 않으며 옷만 걸치고, 머리는 나발이나 소발로 돼있다. 신선암 보살상은 남산마애보살상중 가장 뛰어난 보살상이라 한다.


▲ 칠불암마애석불

일곱 분의 부처, 칠불암 마애석불
부처가 일곱 분이 있어 칠불암이라 부른다고 하나, 이름은 후에 지어진 것이다. 돌에 불교경전을 새긴 석경 또한 이곳에서 출토되었다한다. 한국에서 불교경전이 출토된 곳은 통일신라때 구례화엄사의 화엄사 석경, 경주남산 창림사터에서 출토된 법화경 석경, 칠불암의 금강경 석경 세군데 밖에 없다고 한다.


석경은 경주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칠불암의 불상들은 마애삼존불과 사방불로서 ‘칠불암 마애석불’로 부른다. 삼존불의 가운데에 있는 본존불은 앉아있는 모습으로 미소가 가득 담긴 양감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는 옷은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사방불도 모두 연꽃이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각기 방향에 따라 손 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 보살상이 본존불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가슴이 길고 다리가 짧게 조각된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경주 남산, 계절마다 느낌 전혀 달라
신선암과 칠불암은 워낙 유명하여 TV나 각종 언론에 자주 소개가 된다. 그래서인지 주말이 되면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으며, 운이 좋아 점심공양시간에 도착하게 되면 푸짐하고 건강한 사찰음식을 먹을 수 있다. 경주 남산은 오를 수 있는 많은 길들이 있고, 계절마다 느낌이 다르고, 불상이나 탑들에 비춰지는 해의 방향에 따라 감동이 다르다. 그리고 남산의 아래에 위치한 산림연구소에는 수많은 풀과 나무들이 있으며, 신혼부부들이 찾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있다. 친구들과 남남산을 찾아 다가온 봄의 냄새와 소리, 모습을 보기를 권하고 싶다.


최상형 레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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