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목탁‧죽비소리 계곡마다 서리다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15-12-30 16: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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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남산을 가다
▲ 경주 동남산 전경

유네스코에서는 경주의 남산지구, 월성지구, 대능원지구, 황룡사지구, 산성지구 다섯 개를 경주역사유적지구로 지정했다. 특히 남산은 150개의 절터와 130개의 불상, 100개 이상의 탑이 확인돼 거대한 야외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라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계곡마다 염불소리와 목탁소리, 죽비소리, 석공들의 돌 다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니 불교의 성지라 불리만 하다. 남산은 수십 번을 가더라도 새롭게 느껴진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갈 때마다 보이는 게 늘어나는 게 아닌가.


달빛이 감실부처상을 비출 때, 숨이 멎기도 해
불교의 성지 동남산 걸으며 丙申年 기운 흡입
“아는 만큼 보이는 경주, 갈 때마다 느낌 달라”


▲ 불곡마애여래좌상

친근한 불상의 따스한 여운 느껴져
먼저 남산 불곡마애여래좌상(佛谷磨崖如來坐像)을 방문했다. 새소리도 듣고 물소리도 듣고 문화재도 보고 마음의 힐링을 충분히 만끽하며 오른다. 오감으로 받아들이며 몸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이 불상은 경주남산의 불상 중 가장 오래된 불상이다.


인도나 중국에는 석굴사원이 많이 있다. 이유는 인도인들은 비가 많이 오고 더위를 피하기 위해 산으로, 동굴로 들어가 생활하게 됐고 그래서 석굴사원이 많이 발달했다. 그러나 신라는 석굴사원을 만들기에는 화강암이 단단해 바위에 마애불(磨崖佛)이나 감실(龕室)을 만들었다. 만약에 인도나 중국처럼 석굴사원이 가능했다면 남산전역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돼 있었으리라.


모든 문화재를 볼 때에는 당시 만들어진 시대 상황을 생각해보라. 감실부처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불상의 모습과는 무척 다르다. 여인의 모습, 할머니의 모습이다. 머리 부분은 두건을 덮어쓴 것 같은데 귀 부분까지 덮여있다.


얼굴은 약간 숙여져 있으며, 둥글둥글하게 조각하고 눈은 은행 알처럼 두툼하다. 어깨는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고 옷은 양어깨에 걸쳐있다. 손은 옷 속에 넣어 표현되지 않았고 옷이 수직으로 흘러내려 사각형 대좌를 덮고 있다. 오른발만을 밖으로 드러내 부자연스럽게 표현했다. 대좌를 덮은 옷은 아랫단이 장막을 만들어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다.


배동 삼존불, 장창골 애기부처와 함께 신라 석불로는 이른 시기인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 불상으로 인해 계곡 이름을 부처 골짜기라고 부르게 됐다. 우연하게도 맞은편에 선덕여왕의 능이 존재해 불심이 깊은 석덕여왕의 모습일 수도 있다고 한다.


불상은 언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여기는 달빛이 불상을 지날 때 무척 아름답다고 한다. 1980년대에 일본인이 불상의 낮과 밤의 모습이 다르다는 이야기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해 달빛이 불상을 지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감실부처는 석굴암이나 사찰의 불상과는 다른 무척 친근한 모습이고, 기도하면 당장이라도 친근하게 이야기해줄 듯하다. 인공의 조명이 아닌 자연의 조명에 따라 미소가 아름답다. 천 삼백년 전 거대한 바위에 정과망치로 뜯어내고 깨고 파서 만든 불상들, 중국과 인도는 사암이라 웅장한 석굴사원을 만들 수 있지만 섬세함과 디테일이 없다. 우리불상은 단단한 화강암이지만, 입술, 눈, 코, 손가락이 무척 섬세하다.


화강암에 생명을 부여한 석굴암의 미
석굴암을 보고 많은 이들이 감동을 한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1992년 석굴암을 10분정도 감상할 예정이었지만 40분이 지나서야 나왔다고 한다. 찰스왕세자는 석굴암에 큰 감동을 받아, 이 느낌을 잊지 않고 주변도 보고 싶어 산책로를 통해 걸어서 불국사로 내려왔다.


단단한 화강암에 생명을 부여하고, 머리카락과 손가락을 보면 신라인들의 미의식에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진다. 석굴암의 아래에는 불국사가 자리해 있다. 신라인들의 꿈은 부처님의 나라로 가는 게 아니었을까.


불국사는 부처불(佛) 나라국(國) 부처의 나라이다. 하늘이 아닌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극락을 만들고자 불국사를 만들었다.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를 지나면 대웅전이 나오는데 이것은 현세의 극락을 의미한다고 하며, 연화교와 칠보교를 건넌다는 것은 극락전, 즉 내세의 극락을 의미한다고 한다. 네 개의 다리를 건너면 현세와 내세의 부처의 세계를 모두 만나볼 수 있게 된다.


▲ 탑곡마애불상

석가여래가 연꽃 위에 앉은 마애불상
불곡에서 20분정도 이동하면 탑곡 마애불상군이 나온다. 통일신라시대에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남쪽에 3층 석탑이 있어 탑곡이라 부른다. 마애불상군이라는 명칭은 높이 약 10m, 사방 둘레 약 30m의 바위와 주변의 바위 면에 여러 상이 새겨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북쪽면에는 마주 선 9층 목탑과 7층 목탑 사이에 석가여래가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고, 탑 앞에는 사자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목탑의 중간에는 층층마다 창이 열려있고, 각층의 끝머리에는 풍경이 달려있다. 사자 한 마리는 입을 벌리고 있으니 시작을 의미하고, 입을 다문 사자는 끝을 의미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부처의 세계를 지킨다는 뜻이다.


동쪽면에는 가운데에 여래상이 새겨져 있고, 주위에는 옷을 펄럭이며 내려오는 천사들의 모습, 부처의 세계를 찬양하는 승려상, 보살상, 인왕상, 나무 등이 새겨져 있다. 남쪽면에는 삼존불이 정답게 새겨져 있는데 한 보살은 가운데로 약간 몸을 기대고 있으며 또 다른 보살은 고개를 돌리고 있고, 옆에는 여래상과 승려상이 새겨져 있다.


서쪽면에는 능수버들과 대나무 사이에 여래상이 새겨져 있다. 이와 같이 여러 상이 한자리에 새겨진 예는 보기 드문 일이며, 총 34점의 도상이 확인되고 있다고 한다. 탑곡은 가을에 최고의 풍경을 선사한다. 눈을 감고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면 극락의 세계가 펼쳐진다고 하니 꼭 가을에 방문해 보시길 바란다.


▲ 보리사미륵골석조여래좌상

자비롭고 거룩한 미륵골 석조여래좌상
다음으로 향한 발길은 보리사 미륵골 석조여래좌상이다. 이 불상은 신라시대 보리사 터로 추정되는 곳에 남아있는 석불좌상이다. 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의 대작이며,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석불 가운데 가장 완전한 것이다.


연꽃팔각대좌 위에 앉아 있는 이 불상은 석가여래좌상이다. 반쯤 감은 눈으로 이 세상을 굽어보는 모습이라든가 풍만한 얼굴의 표정이 자비로우면서도 거룩하게 보인다. 별도로 마련된 광배에는 연꽃 띠 바탕 사이사이에 작은 불상을, 그 옆에 불꽃 무늬를 새겼다.


손 모양은 오른손은 무릎위에 올려 손끝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다. 특히 배 모양의 광배 뒷면에는 모든 질병을 구제한다는 약사여래좌상이 선각돼 있는데,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다.


사실 고구려백제는 불교를 쉽게 받아들였으나 신라는 귀족들이 반대가 심했다. 이차돈의 순교로 공인되며 원효대사가 책을 편찬하면서 불교가 대중화됐다. 경주남산이 불교의 성지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016년 병신년 새해, 불교의 성지인 이곳 동남산을 걸으며 한해의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최상형 레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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