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만에 밝혀진 진실'…여순사건 피해자 명예회복 과제

연합뉴스 / 기사승인 : 2020-01-20 17: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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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희생자 무죄 판결…재심 청구 잇따를 듯
'국회서 낮잠' 명예회복 담은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 시급

여순사건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 희생자에게 72년 만에 무죄 판결이 내려져 피해자 명예 회복에 관심이 쏠린다.
 

20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부(김정아 부장판사)는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재심 선고 공판에서 철도기관사로 일하다 처형당한 고(故) 장환봉(당시 29세)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72년만에 푼 '한'
20일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린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재심 재판에서 고(故) 장환봉씨의 딸 장경자(왼쪽)씨와 아내 진점순(97)씨가 무죄를 선고받고 기뻐하고 있다. 재판부는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사형당한 장환봉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밝히며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혀 당시 여순사건과 관련해 처벌을 받은 민간인도 구제될 수 있을지 관심이다.
 

특히 재판부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열린 군법회의에 대해 "일반적으로 폭넓게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혀 과거 민간인 군법회의가 내린 판결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여순사건 연구자인 주철희 박사에 따르면 1948년 여순사건 당시 호남지구 계엄사령부는 10차에 걸쳐 민간인 군법회의를 열었다.
 

9차까지 열린 군법회의에서 민간인 3천715명이 재판에 회부됐으며 이 가운데 2천680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장씨는 3차 군법회의에서 616명과 함께 재판에 넘겨졌으며 46명이 사형을 당했다.
 

1,2,3차와 7차 군법회의는 집행 명령서가 남아 있어 구체적인 형량을 알 수 있지만, 나머지 재판은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당시 재판은 100여명 이상 많은 수를 한꺼번에 재판해야 해 피고인마다 개별적으로 판결문을 작성하지 못했던 것으로 여순사건 연구자들은 보고 있다.
 

10차 군법회의는 재판에 회부된 인원이 정확하게 특정되지 않았지만, 주 박사는 1천명은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1949년 10월 25일 전남도 당국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여순사건 당시 희생된 민간인은 1만1천131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민간인 희생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남에 따라 장씨처럼 억울하게 희생을 당한 민간인 유족들의 재심 청구가 잇따를 전망이다.
 

여순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 보상을 담은 특별법 제정이 국회에서 처리가 늦어지면서 이들 피해자는 집단 소송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과 시민단체는 하루빨리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돼 일괄적으로 명예회복이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주 박사는 "당시 국가 권력이 민간인에게 불법적, 위법적 폭력을 행사한 것을 사법부가 심판한 것"이라며 "국가가 폭력을 행사했다면 당연히 이를 구제할 특별법 제정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가지게 된 것으로 입법부와 행정부가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순사건 특별법안은 2001년 16대 국회에서 김충조 전 의원이 처음 발의했으나 제정되지 못했고 19대 국회에서도 김성곤 전 의원이 연이어 발의했으나 법안 채택은 무산됐다.
 

20대 국회에서는 2017년 4월 정인화 의원이 특별법안을 발의한 이후 5개 법안이 발의돼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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