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가장 작은 보호센터…1평이라도 크면 좋겠어요”

김승애 기자 / 기사승인 : 2019-12-13 16: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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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愛울산- 마중물 주간보호센터
▲마중물 주간보호센터는 울산에서 가장 작은 1호 개인 운영 보호센터다. 센터의 낮은 그들의 학교가 된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센터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캐럴이 기자를 반겼다. 오경자 마중물 주간보호센터 원장은 악수를 나누며 웃는 얼굴로 센터를 소개했다. 마중물 주간보호센터는 울산에서 가장 작고, 1호 개인 운영 보호센터다. 센터는 12명의 중증 여성장애인과 복지사 3명이 지내기에는 조금 작다고 느껴진다. 낮 시간 센터는 그들의 학교가 된다. 발표회 때 부를 캐럴은 곧 웃음으로 완성됐다. ‘저렇게 행복할까’ 생각해봐도 센터 식구의 얼굴이 모든 걸 말해준다.

“무연고·무일푼…건강 잃었지만 행복해”

▲오경자 마중물주간보호센터 원장.


오 원장은 2000년에 울산에 왔다. 그 당시 울산은 장애인 인권 불모지이자 장애인 성폭력 1위를 달렸다. 지적장애인인 딸을 데리고 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어디든 맡겨야 했다. 울산의 장애인 시설을 찾아 딸을 맡기고 거기서 주방보조 일까지 맡아했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오 원장은 ‘여성 장애인이 행복한 공간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고도 없는 울산에서 센터를 운영하기에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강사 일을 통해 받는 돈으로는 뭐든 시작하기 힘들었다. 첫 번째 시설은 센터도 아닌 일반 가정집이었다. 그렇게 13년을 지냈다. 주간보호센터로써 인정도 받지 못 했다.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래도 해 뜰 날은 온다. 다른 매체의 홍보를 통해 울산시에 마중물 주간보호센터가 알려졌고, 극적으로 설립 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장애인 보호 시설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인가를 받기까지 정말 힘들었는데, 그래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다치기 전에 이룰 수 있어서요. 인가 때문에 마음고생을 할 때쯤이었나, 갑자기 오른쪽 귀가 안 들리더니 오른쪽 시력에도 문제가 생겨서 지금은 왼쪽으로만 생활하게 됐네요”

왼쪽으로 틀어져있던 시선이 보였다. 담담한 말투는 지금까지 겪어온 인생을 대변했다. 반쪽짜리 몸을 이끌고서라도 살아야 했다. 또 키워야 했다. 내 딸과 센터는 남은 반쪽을 잃더라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마중물주간보호센터 학생들이 만든 작품들.

“학교에 가고 싶어요” 우리의 간절한 소원

센터는 2015년 7월부터 울산시에서 지원을 받게 됐다. 지원비 중 90% 이상은 직원 월급이다. 남은 돈으로 운영이 쉽지 않자 오 원장은 직접 발로 뛰었다. 그러자 후원이 늘었다. 고려아연에서는 5년 넘게 후원을 해주고 있다. 울주군에서는 점심 값을 지원해줘 센터 식구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다. 어렵게 지켜온 센터는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반짝반짝 빛날 준비를 마쳤다.

센터에는 하루하루 기적이 펼쳐진다. “평생을 누워만 지낸 친구가 센터에 들어왔어요. 대소변도 가려줘야 했고 의사소통도 오로지 눈으로만 가능했어요. 그 친구가 우리 센터에 온 지 7년 만에 앉았어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나 체육관이 많아서 거기서 재활치료를 했거든요” 꾸준한 관심과 케어가 변화로 증명된 순간이었다. 

 

▲마중물주간보호센터 학생들을 그린 캐리커처가 벽에 걸려져 있다.


센터에는 검정고시 반이 매주 토요일마다 열린다. 검정고시 반이 결성될 시기에 뇌병변 장애인이 6명이었다.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모두 함께 “학교에 가고 싶어요”, “공부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근교 고등학생, 대학생들의 봉사활동을 통해 시작이 가능했다. 지금은 뇌병변 장애인 5명이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전부 저의 재산이에요. 일을 하면서 저도 몰랐던 교육자로서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됐거든요”
 

▲ 마중물주간보호센터 학생들이 만든 한지공예 작품들

“조금 더 큰집으로 이사…욕심일까요?”

 

주간보호센터는 센터 장애인들이 만든 작품이 빼곡하게 걸려있다. 한지로 만든 책상과 직접 그린 캐리커처가 눈을 사로잡는다. 솜씨가 좋았다. 마음껏 구경하라는 말과 함께 놓인 유자차도 '센터 메이드‘ 유자청이었다. 유자청은 센터 장애인들이 직접 담갔다. 당뇨가 있는 회원들을 위해 커피, 녹차가 아닌 청을 직접 만들어 먹고 있다.

음악 치료가 진행되던 시간에 기자도 참관해 지켜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인사하자 수업을 하다가도 “네~” 밝은 목소리로 인사한다. 한 분은 자기가 그린 그림을 뿌듯한 표정으로 자랑 했다.

마중물 주간보호센터의 가족들은 1,2급의 지체, 뇌병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 센터에서 운영되는 프로그램은 일반 장애인 주간보호센터와 다르다. 특히 정적이고 정신 수양에 도움 되는 활동 위주로 구성돼 있다.

센터는 매일 다른 수업을 진행한다. 한지 공예, 토탈 공예, 음악치료, 도자기 만들기는 특히 인기가 많은 수업이다. 그런데 오 원장에게도 걱정이 하나 있다.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걱정이죠. 아무래도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라 돈이 많이 들어요. 한지 공예는 작품 하나에 2~3만원이면 됐었는데 물가가 올라서 7만8000원 정도 투자를 해야 해요. 그 때문에 7년째 이어오다가 지금은 잠시 중단 했죠”

센터에서 하는 모든 활동은 5년 이상 지속해왔다. 겉핥기식 수업은 지양한다. 강사들도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으로 구성한다. “악기 치료랑 한지공예는 돈이 들더라도 꼭 하고 싶어요. 감각을 깨워주고 정신적으로 안정을 주거든요. 도자기 만들기나 식물 공예는 자기 작품이 생기고 그걸로 전시회도 할 수 있어서 성취감이 커요”

지적장애인은 뇌병변 장애인의 손과 발이 돼 준다. 뇌병변 장애인은 지적장애인의 머리에 의지한다. 이곳은 서로의 터전이다. 그들의 삶을 만들도록 실천하는 공간이다. 오 원장은 올해가 가기 전 소원이 하나 있다. “여기서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이사 가고 싶어요. 국가 자체가 불황인 것은 알지만 1평이라도 큰 곳이면 좋겠어요. 제 욕심일까요(웃음)”

김승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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