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19-11-04 1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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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종합일보 박하용 필진(세진중공업 관리/지원부문장 이사)
▲ 박하용 (주)세진중공업 관리/지원부문장 이사
‘파우스트’의 저자 괴테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100m 달리기를 하는데 다른 방향으로 뛴다면 아무리 빠르다고 하더라도 결승점에 도착할 수 없다는 말이다. 비폭력 무저항 운동으로 알려진 마하트마 간디 역시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속도는 의미가 없다”는 말을 통해 방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올해 비정규직 수가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난 것은 통계 조사 방식이 바뀌면서 기존 통계에 빠져 있던 기간제 근로자가 대거 비정규직으로 유입된 영향이 컸다. 하지만 이런 일회성 요인에 따른 증가분을 빼더라도 비정규직이 2004년 이후 최대폭으로 증가했다. 정부의 고용정책이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통계청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748만1000명으로 집계됐다. 작년에 비해 86만7000명 증가한 것이다. 이는 전체 임금 근로자 2055만9000명 가운데 36.4%로 2007년의 36.6% 이후 가장 높은 비정규직 비중이자 2055만9000명 가운데 36.4%로 2007년의 36.6% 이후 가장 높은 비정규직 비중이다.

정규직은 1307만8000명으로 작년 조사때 보다 오히려 35만3000명 줄었다. 정규직이 감소한 것은 201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현 정부는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민간으로 정규직화 추세를 확산시키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오히려 정규직은 감소하고 비정규직 근로자 절대 숫자가 늘고 비율도 증가한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용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이처럼 비정규직이 급증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과 경기부진 여파로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줄인 반면 인건비 부담이 덜한 시간제와 기간제 근로자 등을 늘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정부가 노인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 공공근로를 늘리면서 비정규 채용이 대폭 늘어난 측면도 있다.

비정규직 확대를 고용의 안정성 측면에서 질적 저하로 볼 수 있지만 기업이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적응한 측면도 있다. 민간 기업은 정부의 의지와 달리 시장 상황에 따라 고용과 퇴출이 상대적으로 유연한 근로 형태를 선호했고, 이번 조사에서 그 결과가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전체 고용의 36.4%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안에서도 기간제, 파견용역, 특수형태근로, 일일근로, 가정내 근로 등 다양한 형태로 고용이 이뤄지고 있었다.

정부의 경제지표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나 경제성장률 모두 최악이다. 통계자료를 종합해 보면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 등 포용성장이란 이름으로 시행된 경제정책이 시장에서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임금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정부가 문제해결을 목적으로 특정한 가격을 인위적으로 강제하면 누군가는 ‘의문의 1패’를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폐기가 대두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성장보다 분배에 초점을 맞춘 좌파정책으로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후기 케인즈학파가 주장한 임금주도성장을 이론적인 기반으로 한다.

후기 케인즈학파를 꿰뚫는 철학은 유효수요(금전적 지출을 수반한 수요)가 장기 성장도 좌우한다는 것이다. 공급 측면의 생산성 향상이 없다면 장기적으로는 생산비용 상승 등으로 성장이 더뎌진다는 주류 경제학을 뒤집는 논리다.

소득주도성장이 과연 성장론이냐는 의구심도 여전하다.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낸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는 “소득정책의 방향은 반대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이는 성장을 유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잘못됐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 명예교수는 “분배정책은 선진국에 진입 할수록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하지만 독일 등 선진국의 예에서 보듯 경제가 잘 굴러가게 한 다음 추구하는 것이 그에 따른 비용이 적다”고 주장했다. 경제통 김성식 바른미래당 의원도 “소득주도성장은 성장론이 아니다”라고 했다.

소득주도성장은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임금주도성장: 개념, 이론, 정책(Wage-led growth: Concept, theories and policies)’이라는 논문이 나오면서 부상했다. 후기 케인즈학파인 마크 라보이(Marc Lavoie, 캐나다 오타와대)와 엥겔베르트 스톡하머(EngelbertStockhammer, 영국 킹스톤대)가 썼다. 더불어민주당과 학계 일부에서 이를 인용했고, 현 정부 들어 제도로 구현하려 시도했던 것이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11월 서강대 정책세미나에서 “소득주도 성장론은 논리적인 비약과 불완전성이 존재하고, 그 인과관계가 학계에서 실증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가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무리한 가정에 의존해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이 이 이론을 택한 것은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국가 경제와 국민을 대상으로 놓고 실험하는 것이란 얘기다. 최근 국내 설문조사들을 보면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경향이 나타난다.

방향은 맞지만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 등이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고 4대보험 문제를 비롯한 요소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도 전에 제도가 너무 빨리 움직이고 있다는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소득주도 성장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는 점에서 괴테와 간디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기업을 압박하는 정책과 반기업 정서로 국내투자 대신 해외투자가 늘고 있다. 증세와 대기업 때리기로 막대한 투자비와 우수한 인력이 요구되는 인공지능, 자율주행, 바이오혁명, 에너지산업 등과 같은 미래먹거리는 다른나라에 뒤처지고 있다.

기업들이 때로는 결함이 있지만 분노와 적폐의 대상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대기업을 악의 축으로 대하며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중소기업을 살리고자 했던 정부는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정책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 최대의 금융회사인 JP모건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중소기업뿐 아니라 성공한 대기업이 없이 부강해진 나라는 없다”며 반(反)기업 정서를 비판했다. “민간기업은 어느 나라에서든 진정한 성장의 엔진”이라고 강조하면서 기업을 대하는 인식의 변화가 없다면, “그건 일자리도 없고 기회도 충분하지 않은, 성공하지 못한 나라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이먼 회장은 “정부가 기업을 통제하면 기업과 은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적 이해관계에 익숙해 진다”며 “이는 기업과 시장의 비효율, 특혜 그리고 부패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현상은 사회주의를 시도한 다른 나라처럼 국가에도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업이 눈치 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혁신성장과 일자리가 많아 진다. 기업의 성장만이 일자리 해결의 답이 될 것이다. 해답을 찾기 위해 우선적으로 정부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속페달을 밟지 말고 방향 오류를 인정하고 국민이 바라고 원하는 정방향으로 유턴하는 자세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울산종합일보 박하용 필진(세진중공업 관리/지원부문장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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