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21-02-18 15: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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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종합일보/신문-홍성조의 역사·문화이야기 96

▲ 쌍두탑인 다보탑(국보 20호)과 석가탑(국보 21호)이 있는 불국사는 535년(법흥왕 22년)에 김대성의 발원으로 건립했다고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 불국사 경내 통일신라시대의 화강암제 석탑인 다보탑은 535년(법흥왕 22년)에 불국사가 창건된 후 751년(경덕왕 10년) 불국사가 중건될때 석가탑(불국사 3층 석탑)과 함께 수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탑과는 색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아름다우면서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보탑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 경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화강암제 석탑인 다보탑은 535년(법흥왕 22년)에 불국사가 창건한 후 751년(경덕왕 10년) 김대성의 발원으로 불국사가 중건될때 불국사 3층 석탑과 함께 수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높이 10.4미터, 기단 폭 4.4미터이며 1962년 12월20일 국보 제20호로 지정됐다.

다보탑과 석가탑은 신라건축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작품이며 삼국유사에 따르면 김대성이 경덕왕 751년에 불국사를 건립했다고 기록돼 있다.

다보탑은 석가탑과 달리 특별한 모양을 하고 있어 각층의 갯수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또 다보탑은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탑과는 색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원과 사각형, 팔각형의 층이 사각형의 층사이에 자리하여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다보탑에도 슬픔과 비극의 역사가 스며들어 있다.

탑내부의 유물들은 일본인들에 의해 그 자취를 감추었고 원래 4마리였던 돌사자상 중 3마리나 사라졌고 한마리의 사자만이 홀로 다보탑을 지키고 있다. 

▲ 석가탑의 정식명칭은 ‘불국사 3층 석탑’이며 ‘석가여래상주설법탑’의 준말이다. 또 무영탑으로 그림자가 없다는 뜻의 가슴 아픈 천년의 애타는 사랑이 서려있는 탑으로도 유명하다.
●석가탑

석가탑과 다보탑, 두탑을 현재와 같이 동서로 나란히 세운 까닭은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 법화경의 내용인 ‘다보여래상주증명’에 따른 것이다.

다보탑과 함께 불국사를 대표하는 쌍두탑, 일명 석가탑으로 잘알려진 국보 21호의 정식명칭은 ‘불국사 3층 석탑’이다.

석가탑이라고 하는 명칭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의 준말이며 또 그림자가 없다는 뜻의 무영탑이라고도 불린다.

무영탑이라는 이름에는 가슴 아픈 천년의 애타는 사랑(아사녀와 아사달)이 영지라는 연못을 거점으로 흥미진지하게 전해 내려오는 설화로 석가탑의 명성에 그 의미를 더한다.

석가탑은 신라 8세기 경덕왕 시절 불교문화가 가장 찬란했던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다보탑과는 다르게 완성된 고전양식에 철저히 의거해 만들어 졌다.

탑의 표준같은 모범을 보이면서 이상적인 석탑의 형태로 인정 받으면서 기단부와 탑의 몸통하단부는 건장함을 동시에 나타낸다.

또 탑이 지나치게 육중해보이지 않도록 체감률과 상륜부의 치솟는 높이로 가벼운 필치를 만들어 전체적으로 시원하면서 믿음직한 석탑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글 정리: 울산종합일보/신문 홍성조 발행인, 대표이사
사진: 김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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