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지 알아!”에 숨은 심리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20-05-22 14:3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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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종합일보 임동재 객원논설위원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에게 지속적인 폭행을 당하고 난 후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해 생을 마감했다. 아파트 내에 이중 주차된 자신의 차를 밀어서 기분 나빴던 것이 폭행의 발단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후 지속적으로 신체 폭행과 언어폭력을 자행한 행동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아파트의 관리소장이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그의 업무수첩에는 ‘공갈협박죄’, ‘문서손괴’, ‘빈정댐’, ‘여성소장 비하발언’ 등의 단어들이 적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이 이들을 극단적으로 선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일까. 갑을 관계에서 권리의 강자인 갑이 을에게 행하는 부당한 행동을 말하는 ‘갑질’. 그런데 단순히 ‘갑질’이라는 단어만으로 이처럼 반복되는 비극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주택관리공단이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폭언, 폭행 건수를 조사한 결과 2923건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주취 폭언, 폭행이 1382건으로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했고, 단순히 기분 나쁘다는 이유도 상당수 차지했다.

경비원에 대한 이러한 행위는 최근 5년간 15배나 늘어났다고 하는데, 이전에도 쉬쉬하고 넘어간 경우를 감안하면 실제 더 많은 갑질이 아파트 내에서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각종 계약 관계에서 ‘갑을’이라는 말이 부당한 이미지를 심어준다는 이유로 다른 말로 순화해 사용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갑을’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갑과 을의 관계가 없어질까. 우리 사회에서 갑을 관계는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뿐더러 없어서도 안 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갑을관계, 갑질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문화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는 흥미로운 해석이 있다. 사회적 관계에서 평등한 관계보다는 위계적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수직적 집단주의’가 그것이다.

자기가 속한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더 우월해야 하고, 한 집단 내에서도 같은 구성원들끼리 평등한 것보다는 위계질서를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집단 내에서 자신의 존재는 평범한 것이 아니라 위계질서의 상위에 있어야 한다는 강한 자존감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제대로 알아봐 주지 않으면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하며, ‘무시당한다’고까지 여기는 심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에 비해 약자의 입장인 건 사실이다. 문제는 내가 지불한 대가에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넘어서 ‘머슴 주제에’, ‘내 말 한 마디면 당장 잘릴 수 있어’와 같은 갑질을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구나 갑을 관계에서 일방적일 수는 없다. 갑에게 갑질을 당하고, 을에게 갑질을 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어느 학교 출신에 어느 회사에 다니며, 어느 동네에 살고, 아파트 집값을 따지며 자연스레 남과 비교하는 것 또한 갑질의 시작이 아닐까.

남의 갑질을 손가락질하면서도 나의 갑질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한 심리. 전문가들은 이러한 심리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것과, 존재감의 상실이 갑질을 통한 분노 표출로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단언컨대 갑질은 앞으로도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최근에 이어진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고, 관계 회복을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내가 누군데, 내가 누군지 알아!”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종합일보 임동재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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