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향한 천년의 기다림, 영지에 깃들다

김귀임 기자 / 기사승인 : 2019-05-30 14: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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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로맨스 아사달·아사녀 이야기
▲1300여 년 전 불국사의 석가탑이 물에 비쳤다는 ‘영지(影池)’. 빨간 원으로 표시된 곳이 아사달의 부인 아사녀가 뛰어내린 지점이다.


경주의 한 잠잠한 못인 ‘영지(影池)’에는 무려 1300년에 걸친 애처로운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림자 못이라는 뜻의 그곳은 이름에 걸맞은 이야기를 가진 한 부부의 슬픈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들을 기리며 찾은 못에서 혹자는 희대의 로맨스라며 그들을 추모한다. 못 근처 여기저기 발견되는 애달픈 역사의 현장에서 어쩌면 설화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더하며 발자취를 쫓아봤다. 누가 알겠는가. 깊은 밤이 다가와 달빛에 비춰진 못에서 아사달, 아사녀를 그림자로 만나볼 수 있을지.

석가탑 그림자와 함께 감춰진 아사녀
영지 옆, 남양 홍씨의 또 다른 역사


▲아사달이 아사녀를 그리워하며 만든 '영지석불좌상'. 통일신라 석불양식을 잘 나타낸 이 불상은 얼굴이 새겨지지 않았으나 결가부좌한 모습에서 기품이 흐른다.


# 아사달·아사녀,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그림자마저 숨겨버린 못. 영지에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슬픔이 잠겨 있다.

이야기의 클라이맥스(climax)를 담당했던 문제의 바위 위에 서자 그들을 어렴풋이 기억하던 사람들이 시대를 역행하게 도왔다.

신라 경덕왕 10년(751년)경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은 불국사를 개수하고자 당대 빼어난 실력을 자랑했던 백제의 석공 아사달을 찾았다.

당시 서라벌이었던 이곳에서 탑을 만들게 된 아사달은 불국사 주지승으로부터 한 가지 당부의 말을 듣게 된다.

‘탑을 완성하기 전까지 절대 여자를 만나지 말 것’ 신혼이나 다름없던 아사달에게는 너무 가혹한 요구였다.

그의 부인인 아사녀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그녀는 매일 밤 아사달을 애절하게 그리다 여러 해가 지나자 결국 그를 찾아 신라의 땅을 밟기에 이른다.

그러나 아사달은 부처의 부름을 받은 몸. 결국 이들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는다.

안쓰러운 마음에 주지승은 탑이 완성되면 못에 그림자가 비칠 것이니 기다려 달라 간청하고 아사녀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매일 밤 못을 들여다본다.

그러길 여러 달. 그녀는 끝내 그의 그림자가 떠오르지 않자 크게 상심하며 바위 위에서 몸을 던져 못에 품겼다. 한편으로는 탑이 비춰진 환영을 보고 너무 반가운 나머지 뛰어들었다는 설도 있다.

그렇게 못은 잊히지 않는 그림자를 감춘 채 이름만을 남기며 고고히 흘러왔다.


▲아사달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국보 제21호 석가탑의 모습.

 

# 곳곳에 발견된 슬픈 발자취
다보탑에 이어 석가탑을 완성한 아사달은 부리나케 못으로 향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그는 영지 동북간쪽 솔밭에 아내를 그리며 한 불상을 만드는데, 사람들은 이를 영지석불좌상(影池石佛坐像·경북유형문화재 제204호)이라 부른다.

이 불상은 특이하게도 얼굴의 형상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졌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아사달이 불국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다른 여인의 얼굴이 생각나 미완성의 불상으로 남겼다고 한다.

그러나 애달픔과 그의 솜씨가 담긴 이 불상은 통일신라 석불양식을 잘 나타낸다. 특히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결가부좌한 모습은 얼굴을 보지 않아도 은은한 기품이 흘러나온다.

아사달은 그녀를 위한 불상을 남긴 채 뒤이어 자신의 반쪽을 따라 영지 속으로 물거품이 돼 사라진다. 그들이 몸을 던진 영지의 한 바위 위에서는 이따금씩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사랑을 아끼고 기억하고자 제를 지낸다.

그들이 서로를 추억하며 눈물을 흘렸던 그 바위 위에 서자, 그들의 슬픔과 깊은 사랑의 감정이 바람에 실려와 볼을 간지럽혔다.

어언 1300년이 흐른 지금, 영지의 물의 수위는 낮아지고 불국사 근처에는 숲이 우거져 석가탑의 그림자는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그들을 이야기 속에서라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그들의 연결 매개체가 돼 하나가 된 그림자 못에서 쉬어가지 않을까.

 

▲남양 홍씨 문중인 통덕랑공 홍계발(洪啓發)의 두 처를 기리는 열녀비각.

# 신비로운 못 근처 또 다른 역사
그들이 잠든 영지에서 불과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 영지를 품은 길에서 풀벌레 소리를 길잡이로 삼아 남쪽으로 걸으면 평화로운 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아사달 부부의 상심을 달래며 찾은 외동읍 원동마을은 그간의 근심을 걷어차듯 시간의 타격을 받지 않은 신비로움과 고고함을 품고 있다.

원동마을은 300여 년 전 남양 홍씨가 개척한 마을로 남양 홍씨 문중인 통덕랑공 홍계발(洪啓發)은 품행 단정은 물론 문장력과 필체가 특출난 것으로 알려졌다.

살짝 그리워져 오는 탄 내음과 과하게 내지 않은 굽이진 길에 심취하며 이 마을을 둘러보다 한 곳으로 눈길이 멈춰 섰다.

열녀비와 함께 자리한 남양 홍씨 가문 열녀비각은 역사가 깃든 마을과 어우러져 있다.

영조 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하자면, 통덕랑공 홍계발의 처인 월성 김씨와 후처 나주 정씨는 사랑채에 혼자 있던 남편 홍계발을 호랑이가 헤치려고 하자 두 여인이 힘을 합쳐 몰아낸다.

이후 1730년 영조가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모든 이의 본보기가 되길 바라며 열녀비각을 정려하게 된다. 지금도 그 후손들이 두 여인의 헌신적 마음을 기리기 위해 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현 시대를 살아가면서 아득해져 버린 설화를 품어가는 것도 역사의 한 조각일 것이다.

한 부부의 애달픈 사랑과 그 일대의 역사를 담은 그림자 못은 시대를 투영하기 위한 듯 여전히 맑다.

김귀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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