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낭산 일원(사적 제163호)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20-06-09 09: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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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종합일보/신문-홍성조의 역사·문화이야기 62


▲ 서쪽에서 바라본 경주 낭산의 모습과 황복사지 삼층석탑이다.(국보제37호) 이 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며 신라 효소왕이 부왕인 신문왕의 명복을 빌고자 692년에 이 탑을 세웠다. 본지 홍성조 대표이사가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취재차 방문했다.
경북 경주시 보문동 일대에 자리한 경주 낭산은 크기 82만6396평방미터 높이 108미터의 남북으로 길게 누에 고치처럼 누워있는 나지막한 산이다.

남쪽과 북쪽에 봉우리를 이루었고 허리는 잘룩해 야산처럼 낮고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고 있다.

산자락에는 거문고의 명인 백결선생이 살았으며 문창후, 최치원이 공부하던 독서당도 있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경주의 진산이라 기록돼 있으나 삼국유사,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주산으로 되어 있다.

실성왕 12년 낭산에 구름이 일어나 향기로운 바람이 가득한채 사라지지 않자, 신령이 내려와 있다고 생각해 그 후부터 벌목을 금했다.

이러한 낭산을 배경으로 삼국통일을 기념하기 위한 사천왕사가 창건됐다.

이 절 뒤편에는 선덕왕릉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선덕왕이 “내가 죽으면 도리천 중에 묻으라”라고 유언한 장소이기도 해서 불가의 말대로 이 산을 수미산이라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 경주 낭산 서쪽 중턱에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화장터 또는 소조불상을 모셨던 곳으로 추정되는 능지탑이 있다.
또 동북쪽에는 황복사터와 삼층석탑이 있으며, 서쪽 중턱에는 낭산마애보살삼존좌상이 있다.

그 주변으로는 문무왕의 화장터 또는 소조불상을 모셨던 곳으로 여겨지는 능지탑이 남아 있다.

글 정리 : 울산종합일보/신문 홍성조 발행인, 대표이사
사진 : 최상형 기자·박기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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