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성덕왕릉(사적 제28호)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20-06-30 13: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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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종합일보/신문-홍성조의 역사·문화이야기 64
▲ 신라 제33대 성덕왕릉(702~737)은 35년 재위기간 동안 백성들을 위하는 올바른 정책과 또 정치를 안정시켜 신라의 전성기를 이룩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본지 홍성조 대표이사가 성덕왕릉을 취재차 방문했다.

 

성덕왕릉은 경주시 조양동 산8에 소재하며 통일신라시대 제33대 왕(성덕왕 702~737재위)이며 신문왕의 둘째아들이자 효소왕의 동생이다.

성덕왕은 농사짓는 백성들에게 정전(15세이상 남자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는제도)을 지급했 구흘(국가적, 사회적 재난을 당한 사람이나 빈민에게 금품을 나눠주어 구제함)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정치를 안정시켜 신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성덕왕은 1만1174평방미터 전체 왕릉의 규모로 왕릉밑둘레 46미터, 높이 5미터이며 왕릉판석들 사이에 탱주를 끼워 고정시켰으며 그 바깥쪽에 삼각형의 석재를 세웠다.

석재사이에 환조의 십이지신상이 배치됐고 모두 방형기단 위에 올려져 있었으며 심하게 파손됐다.

바깥쪽에는 석주를 둘렀는데 석주의 상하 2개소에는 난간의 돌살대 혹은 난간살대 등을 끼우기 위해 홈이 패어 있다.

관석들은 현재 남아있지 않고 분구 언저리에 들러진 판석과 석주사이의 공간에는 깐돌이 있다.
 


▲ 성덕왕릉귀부(경북시도 유형문화재 제96호)경주시 조양동 666, 성덕왕릉경역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귀부(거북모양의 받침돌)가 있다. 귀부는 1개의 돌로 되어 있으며 사각형의 지대석과 거북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능의 안쪽에는 안상을 새긴 석상이 놓여 있는데 상면은 2배의 판석으로 조립했다.

능의 네모퉁이에는 돌사자를 배치했고 석상의 앞쪽에는 문인석 2구와 무인석 2구를 세웠던것같으나 현재는 무인석 1구외 상반신만 남은 석인 1구 밖에 남아있지 않다.

무인석은 평형기단위에 올려져있으며 의장용 갑옷인 양당대를 착용하고 양손으로 칼을 짚고있는 모습이다.

또 능의 앞쪽좌측에는 능비가 있는데 비신과 이수는 없어졌으며 목이 부러진 귀부만 남아 있다.

이곳 왕릉전체 석조물의 조각기법은 통일신라 초기양식에 속하며 십이지를 비롯 석인. 석수. 능비를 두루 갖춘 신라 최초의 완비된 형식의 능묘로 주목받고 있다.

글 정리 : 울산종합일보/신문 홍성조 발행인, 대표이사
사진 : 최상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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