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고헌 박상진 의사 생가를 찾아서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19-03-24 12:26:02
  • -
  • +
  • 인쇄
울산종합일보-홍성조의 역사, 문화이야기5


조선말기 1884년 12월6일(음력) 울산시 북구(청장 이동권) 송정동에서 고헌 박상진(1884~1921)의사가 태어났으며 1887년경 경주시 외동읍 녹동리(노루골)로 이사, 이곳에서 성장한 그는 1898년 15세에 혼인(월성최씨, 영백)하였고 1남(경중), 1녀(창남)를 두었다.

14세때 학식이 높은 왕산 허위(애국계몽, 사상가, 의병장)의 문하에 입문했다.

1902년 정치와 병학을 배우며 명사 문객들과 교재하며 국제정세를 습득했다.

1906년 양정의숙에 입학, 신학문을 공부했고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과 의형제를 맺었다.

1908년 신돌석이 일제의 농간에 빠져 순국하고 스승 허위는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고 의병활동을 하다 체포돼 사형을 당했다.



이를 지켜본 박상진은 스승의 시신을 수습한 후 홍성에서 상경한 김좌진을 만나 서로 의기투합해 의형제를 맺는다.

1909년 양정의숙 법률경제과를 졸업한 박상진은 비밀결사조직 신민회에 가입해 활동했고 1910년 판사등용 시험에 합격해 평양지원에 발령받았으나 부임하지 않고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위한 결심을 다짐한다.

1915년 7월 대구에서 풍기광복단과 조선국권회복단의 일부 강경노선의 인사가 박상진계열의 인사들과 통합해 대구 달성공원에서 광복회를 결성했다.

광복회총사령에 박상진, 부사령에 이진룡이 선임돼 활동을 시작했지만 이진룡의 체포로 김좌진이 그 뒤를 잇게 된다.

광복회는 국권회복과 공화제 실현목적으로 하고 그 실천 방법으로 1.부호의 의연 및 일본인이 불법징수하는 세금을 압수해 무장을 준비한다.

2.만주에 사관학교를 설립해 독립전사를 양성한다.

3.중국 러시아 등에 의뢰해 무기를 구입한다.

4,무력이 준비되는 대로 일본인 섬멸전을 단행해 최후목적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광복회는 비밀 폭동 암살 명령의 4대 기본강령을 바탕으로 전국적인 규모의 조직을 확대했다.

또 대구의 상덕태상회, 영주의 대동상회를 비롯해 광주, 삼척, 예산, 인천, 용천, 서울, 해주 및 만주의 봉천과 장춘에 설립한 곡물상과 잡화상을 연락거점으로 삼아 친일부호들과 일본인이 경영하던 금광, 세금수송 우편마차 등을 대상으로 독립군자금을 마련하기도 했고, 전국곳곳에서 친일부후를 본보기로 처단하는 등 강력한 의열투쟁도 전개했다.

1916년 노백린, 김좌진 등과 함께 조국광복을 위해 항일투쟁을 전개했고 특히 친일파 부호 장승원, 양재학, 서도현 등에게 독립운동자금을 요구하다가 실패하자 이들을 사살하는 등 친일파근절을 위해 노력하다가 체포돼 1921년 38세에 대구형무소에서 사형으로 순국됐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글 정리 = 홍성조, 신권철 울산종합일보 필진
사진 = 최상형 기자

 

[저작권자ⓒ 울산종합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오늘의 이슈

뉴스댓글 >